오피니언

지난여름 우연히 부천의 중학생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불과 1시간 남짓의 짧은 만남이었기에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횡설수설하다 보니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른 어떤 강의 때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돌아온 것만은 확실하다.

학생들은 대개 글쓰기에 관심이 있거나 심지어 전업 작가를 꿈꾸는 작가 지망생도 있었으므로 지역의 꽤 괜찮은 신문사 대표이자 유명 작가를 사칭한 내 말에 기꺼이 귀를 기울여주었다.

나는 먼저 작가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에 관해 얘기했다. 첫째는 고양이나 강아지를 한두 마리 이상은 길러야 작가가 될 자격이 있다고 했다. 비둘기도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 요즘 아파트 단지 곳곳에는 공공연하게 고양이 밥 주지 마세요” “비둘기 모이 주지 마세요라는 살벌한 문구가 붙어있는데, 그런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은 미안한 얘기지만 작가가 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와 함께 비둘기 모이주기 운동에 동참할 사람은 손들어보라고 했더니, 안타깝게도 아무도 손드는 이가 없었다.

둘째는 돈을 벌기 위해 작가가 되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딴 길을 찾아보라고 했다. 내가 너무 어린 학생들 기를 꺾어놓은 것은 아닌지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전업 작가로서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는 나로서는 결코 가서는 안 될 길을 가라고 권할 수는 없었다. 대신 다른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 후 글쓰기는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물론 젊은 나이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돈과 명예를 거머쥔 이들도 있기는 있으나 다른 분야에 진출해 성공하는 것보다 훨씬 확률이 떨어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으로 말한 것이지 어떤 객관적인 자료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둔다)

 

수주 변영로(1898~1961)
수주 변영로(1898~1961)

 

학생들에게 수주 변영로 선생을 아느냐고 물었다. 간혹 들어봤다는 아이들도 있었으나 대개는 잘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수주 변영로 선생이 나와 같은 중절모를 즐겨 쓰고 다녔던 부천 출신의 지조 있는 시인이요, 언론인이라고 소개했다. 기미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해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을 했고, 1936, 동아일보가 발행하던 여성잡지 신가정편집장으로 근무할 때,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해직된 경력도 있다고 했다.

펄벅 여사에 대해서도 물었더니 역시나 잘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펄벅이 1938년 소설 대지를 비롯한 일련의 중국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평생을 유색인, 여성, 고아 등을 위해 헌신한 인권운동가요, 사회운동가라고 소개했다. 특히 펄벅이 1967, 지금의 심곡동 펄벅기념관 자리에 세운 소사희망원은 약 2천여 명에 달하는 혼혈아(아메라시안)들을 먹이고 재우고 가르치는 일을 함으로써 인권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로서 그녀의 참모습을 보여준 대표적인 기관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면서 이왕 작가가 되려고 마음먹었다면 수주 변영로나 펄벅처럼 지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권익 향상에도 힘쓰는 작가가 되라고 했다.

지령인걸(地靈人傑)이라는 말이 있다. 산천이 수려하고 지세가 빼어나면 거기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도 그 기운을 받아 뛰어나다는 의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수주 변영로와 펄벅 같은 훌륭한 작가가 있으니 부천에서도 머지않아 뛰어난 작가가 많이 배출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종헌(시인, 콩나물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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